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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교회의 각 종파

좋은나라 2008. 9. 3. 16:55

한국 장로교의 교단들: 예장통합, 합동, 기장, 고신

1. 한국교회에는 수많은 교파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것들은 장로교,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순복음, 성공회, 등입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장로교는 한국 개신교회의 약 8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장로교도 수십개의 파로 나뉘어져 있다는 데, 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말씀하신대로 장로교는 현재 수십개의 교단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참으로 부끄러운 모습이지요. 부끄럽지만 그 내용을 살 펴보면 일단 그 많은 교단 가운데서도 가장 대표적인 네 개의 교단이 있습니다. 그것들은 대한 예수교 장로회 통합,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그리고 흔히 기장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장로회와 고신파로 알려져 있는 고려신학파입니다.
장로교회 안에 있는 이 교단들은 장로교회를 대표하는 4개의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네 개의 교단이 나뉘어지게 된 분열의 역사는 분명코 하나님 앞에서 칭찬들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2. 그렇다면 그 교단의 분열사를 간단히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해방 후 장로교회는 일제치하에서 심사참배를 했던 문제의 뒷처리로 첫 분열의 쓴 잔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일제치하에서 신 사에 참배한 교회의 지도자들의 회개와 근신이 불만족스러울 뿐만 아니라, 그들이 여전히 교회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데 대한 출 옥 성도들(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감옥에 갔다가 해방되어 출옥한 성도들)의 불만이 결국은 극단적인 재건교회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경남노회에서 근본주의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교회가 신신학을 받아들이고 신사참배의 죄를 청산하지 못했다는 이유 로 고려신학교를 세우고 또한 고신파 장로교로 갈라져 나간 것입니다. 이 때가 바로 6.25가 한참 진쟁중이던 1951입니다. 그러므 로 장로교에서 제일 먼저 분열되어 나간 것이 고신파 장로교입니다.

그 다음에 갈라져 나간 파가 기독교 장로회(기장)입니다. 신사참배 강요와 일제의 탄압으로 1938년 평양 신학교가 문을 닫자, 1940년 서울 승동교회에서 조선신학원이 설립되었고, 이를 주도한 인물이 고 김재준목사였습니다. 해방 후 김재준 목사의 자유주 의 노선에 불만을 품은 보수주의 인사들이 전 평양신학교 교수였던 박형용박사를 중심으로 1948년 평양에 있던 장로회신학교를 재건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두 신학교의합동을 모색하다 1951년 제 36회 총회는 전시 비상사태로 인하여 양 신학교 직영을 취소 하고 대구에 합동으로 총회직영 신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 때 장로회 신학교는 이에 응했으나, 조선신학교 측에서는 응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이듬해 대구에서 모인 제 37회 총회는 김재준 목사를 제명하고 조선신학교 졸업생들을 채용하지 않 기로 결의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1954년 6월 이에 불응하는 기독교 장로회는 분립되어 나가게 되었습니다.

세 번째 장로교회의 커다란 분열의 비극은 1959년도에 왔습니다. 그 때의 issue는 WCC(세계교회협의회)에 가입문제였습니다. 보 수 정통에 예민한 장로교회는 WCC에는 자유주의 신학과 공산국가에서 온 신학자들도 참가하고 있다고 하여 WCC에서 탈퇴할 것을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WCC를 지지하는 측에서는 WCC는 단일 교회나 용공 단체가 아니고 세계 교회의 협의체이므로 세계 각국의 교회와의 유대관계를 가지면서 오늘에 주어진 교회의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는 WCC와 계속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결국 장로교회는 세계 교회협의회(WCC)와의 유대관계를 찬성하는 소위 에큐메니칼 측(통합측)과 이를 반대하는 파(합동측)로 분 열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장로교회는 1950년대에 제일 보수파로 알려져 있는 고신파, 그 다음으로 보수적인 신앙을 부르짖는 예장 합동측 과 중도 통합적인 노선을 걷는 예장 통합측 그리고 교회의 사회참여를 많이 강조하는 기독교 장로회(기장)의 네 개로 나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장로교회는 많은 분열을 거듭하였는데, 한 가지 특이한 것은 고신파나, 예장 통합측, 그리고 기장은 그 이후로 한번도 분열의 역사를 거듭하지 않았으나 예장 합동측은 수십개의 교파로 분열되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3. 그렇다면 그렇게 많은 교단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과연 바람직함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이런 분열의 역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할 때, 역시 주의 몸된 교회가 이렇게 분열의 역사를 거듭한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주님의 몸을 찢는 가슴 아픈 행위라는 사실입니다.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은 고신파와 기장 이 장로교에서 분열되어 나간 때는 이 민족이 6.25라고 하는 이민족 최대의 비극적인 전쟁을 겪고 있을 때였다는 사실입니다. 민 족의 분열로 인하여 동족과 동족간에 서로 죽이는 그 비극의 현장에서 교회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지 못하고, 오히려 자 체 내에서 싸우고 분열을 거듭하고 있었다는 것은 참으로 그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 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 한국교회는 싸움과 분열의 역사를 청산하고 하나됨의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해야하리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