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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노사정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는 재벌해체

좋은나라 2010. 8. 24. 12:55
기관지-연대와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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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12/15 (16:09) from 210.96.159.6' of 210.96.159.6' Article Number : 375
장상환 (ynlabor@ynlabor.co.kr) Access : 23 , Lines : 417
[9801]노사정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는 재벌해체
노사정위원회의 최우선 과제는 재벌해체


장상환 / 자문위원,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1. 노사정위원회 발족과 공동선언문 발표

신년 들어서 경제위기문제를 둘러싼 노사정의 움직임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외환위기와 IMF구제금융 결정 직후에 자본측과 기존 제도권은 자신들이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는 경제파탄 책임론의 국면을 벗어나기 위해 정리해고에
대한 적극적 공세를 폈다. 이를 통하여 재벌들은 쟁점을 자신들이 그 대상이 될 수밖에 없는 경제파탄 책임추궁에서 정리해고로 성공적으로 이동시켰다. 노동자들은 경제위기에 대해서 책임을 질 것이 별로 없는데도 재벌들이 주도하는
여론은 노동측이 정리해고를 수용하지 않으면 경제위기를 벗어날 수 없는 것처
럼 몰아가고 있다. 이야말로 적반하장이다.
이에 노동운동측은 노사정 합의를 하기 위해서는 경제위기에 책임이 있는 재
벌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요구하였고, 이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와 재
벌총수간에 13일의 회합이 있었고, 여기서 재벌개혁을 위한 몇 가지 사항이 합
의되었다.
이러한 사전정지작업을 기초로 1월 14일 새벽에 김대중 당선자측과 노동계는
노사정위원회의 구성에 합의하고 15일 정식으로 발족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
총은 정리해고를 전제조건으로 한다면 노사정위원회 참여를 거부한다는 입장이
었는데 김대통령 당선자측이 이를 수용하여 부실 금융기관 정리해고 문제도 노
사정위원회에서 협의를 거쳐서 처리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노동계의 위원회 참
여가 성사된 것이다.
노사정위원회는 계속된 회의를 거쳐서 1월 20일 내달 임시국회 일정을 감안
해 기업구조조정과 고용조정(정리해고) 법제화 조치등 노사정위 37개 의제를
일괄타결키로 합의하고 이를 포함한 5개항의 [경제위기극복을 위한 노사정간
공정한 고통분담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선언문은 정부의 실천과제를 명시한 1항에서 [정부는 오늘의 경제위기에 대
한 책임을 통감하고 그 원인을 철저히 규명할 것]이라며 ▲1월말까지 실업대책
과 근로자 생활안정대책 마련 ▲2월중순까지 98년도 예산삭감및 조직통폐합 축
소방안 강구 ▲2월말까지 기업의 상호지급보증금지, 결합재무제표 작성등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종합대책 마련을 다짐했다. 정부는 이와 함께 기업경영의
창의성및 자율성과 근로자의 노동기본권보장,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을 통한 저
소득층의 생활보호도 약속했다.
선언문은 2항에서 [기업은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이 과정에서 무분별
한 해고와 부당노동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히고 경
영정보의 성실한 공개를 통한 경영투명성 제고와 재무구조 개선등에 의한 기업
경영정상화에 솔선수범을 다짐했다.
3항에서는 노동측이 기업의 회생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생산성 및 품질향상
에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면서 [기업의 급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을 경우
실업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임금및 근로시간 조정에 적극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4항에서는 노사간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산업평화 유지와 경제위기에 편승한
산업현장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부의 엄정한 대처의지를 밝혔다.
노사정은 [정치권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통감하고 부패척결과 정경유착 근절
을 통해 생산적인 정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자정의 노력을 기울일 것을 바란다
]고 당부하고 국민들에 대해서 해외여행 자제, 에너지 절약등 근검절약의 생활
화를 통한 경제위기 극복 동참을 호소했다. 선언문은 또 [오늘의 경제위기는 특
히 위기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정부와 기업에 책임이 있다]며 [노사정은 IMF체
제하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필요한 종합적인 정책을 이행하는 과정에서 불가
피하게 요구되는 고통을 각 경제주체가 공정하게 분담키로 했다]고 밝혔다.
노사정위원회는 이 선언문외에 산업현장에서 신뢰구축을 위한 선행조치로
▲이기호 노동부장관이 21일 부당노동행위 근절및 노사 대화합을 위한 담화를
발표하고 ▲주요 부당노동행위 사업장에 대해선 김대중 대통령당선자에게 해결
을 건의하며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도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필요한 조치
를 취해줄 것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또 한광옥 위원장은 김당선자에게 ▲서울지
하철등 사용자측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취하 ▲한양대병원등의 구속 노조간부
석방및 사면 복권 ▲택시근로자의 완전월급제 등을 건의키로 했다.
정리해고 입법을 전제로 한다면 노사정위원회 참가 자체를 거부했던 노동자
들로서는 뉴욕으로 간 채권협상단이 21일부터 시작되는 미국 금융기관들과의
협상에서 한국에 유리한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크게 양보한 셈이다.

2. 본격화되는 재벌개혁 논의와 재벌들의 책임회피

그러나 노사정위원회의 한 축을 이루는 재벌들은 경제위기 책임부담과 재벌
개혁에 대단히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1월 19일 발표된 현대 LG 두 재
벌의 구조조정 방안은 IMF가 요구한 상호지급보증 축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
사외이사제 도입 등은 이행키로 했으나 총수의 재산출연이나 지배구조 개선, 주
력업종과 한계사업 정리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노사정위원회의 성립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1월13일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재벌 총수 4명이 긴급히 회합하여 합의한 재벌개혁의 주요 내용은 ① 결합재무
제표 조기도입과 부실경영 은폐방지, ② 상호지급보증 해소와 개별기업의 재정
독립성 강화, ③ 자기자본 비율 제고와 불필요한 업종과 자산 정리, ④ 주력 핵
심 부문으로의 경영역량 집중과 중소기업과의 협력 강화, ⑤ 지배주주 자기재산 제공에 의한 증자 또는 대출보증 등 경영진 책임 강화 등 5개항이다.
합의내용에 대해 이건희 삼성재벌 회장은 "4-5년전부터 제기되어왔던 과제들
로 이제는 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들이다. 정부문제를 떠나 우리 스스로 사활
이 걸려 있으니 하지 말라고 해도 해야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안하면 살 수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잘 알고 있다"고 지지를 표명했고, 최종현 SK재벌 회장도 "IMF가 요구하는 사항이므로 100% 동의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IMF가 요
구하고 김대중씨가 구상한 재벌개혁이 구체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회합에서 김대중당선자는 중요한 발언을 했다. "노동자들은 기업총수들이
사유재산으로 부정축재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재산환수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
러나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아래에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사유재산을 정식
으로 투자하는 것이 노동자들을 설득하고 국제적 신인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된
다. 새정부와 기업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새롭게 출발하는 동지다." 이것은
외환위기에 대해 재벌총수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범위를 제한함으로써 재벌
총수들이 크게 안심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월 15일 전경련 회장단회의에서는 상호지급보증 축소, 국제규범에 맞는 재
무제표 작성의 조기도입, 사외이사제 도입 확대 등을 통해 기업의 투명성과 신
뢰도를 높이자는데 동의했다. 이것은 IMF에서 구제금융의 이행조건으로 요구
했던 것이고 김대중 차기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합의한 것을 전폭적으로 수용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에 들어가보면 재벌들의 반대의사 표시도 적지 않다. 첫
째, 결합재무제표 도입에 대해서는 국제규범을 강조함으로써 이의를 제기했다.
손병두 부회장은 "기술적 회계기준을 고려할 때 여러가지 개념이 맞지 않고 도
입목적에도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고 말하였다. 현재 결합재무제표를 도
입하고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을 고려할 때 실제로는 결합재
무제표 도입을 반대하고 있는 셈이다.
둘째 한계사업 정리, 자산 매각, 합병과 분할 등은 자발적으로 할 것을 선언
했을 뿐, 전경련 산하에 자율기구를 설치하여 매각과 사업교환(이른 바 빅딜)을 추진하는 것은 주주 채권은행, 근로자, 상호지급보증 등 선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공개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구조조정때 지배주주의 재산출자를 강화한다"고만 밝혀 주식 이외 부동산과 동산은 내놓을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셋째, 정리해고 문제에 대해서는 고용창출의 기회 증대나 실업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면서 기업 회생의 최후수단으로 정리해고를 사용하겠다
고 밝혔다. 이것은 현재 대량감원 등 기업들의 노동자 고용에 대한 처리방식에
비춰볼 때 단순한 제스춰에 지나지 않는다.
넷째, 경영책임에 대해서도 주식회사의 대주주는 분명히 유한책임이고 이것
또한 시장경제 논리에 맞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경영부실에 대한 책임 경영차원
에서의 총수퇴진 문제에 대해서도 시장경제논리, 상법과 제도에 맞게 이루어져
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영이 부실할 경우 대주주의 주식이 소각되고 소액주주의 소송 권한이 있어 기업이 부도나면 자연히 경영권을 잃게 될 것이지만 인위적인 퇴진은 있을 수 없다는 시각이다. 이것은 현재의 총체적 경제위기, 외환위기에 대해서 재벌들이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의사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속에서 1월 17일 롯데그룹 신격호(신격호)회장은 재벌총수 가운데 처
음으로 고금리의 악성 차입금에 시달리고 있는 일부 계열사들의 재무구조개선
을 위해 일본에 있는 개인재산 1,000만달러(160여억원상당)를 그룹경영을 위해
출자하겠다고 밝혔다. 신회장은 또 일본내 금융기관을 통해 3억-5억달러를 차입
하여 우선 1억달러를 이달 중 들여오고 나머지는 상반기중에 들여올 것이라고
밝혔다. 그룹측은 일본에서 들여오는 외화자금 가운데 일부는 건설 유통 제과
음료등 주력사들의 재무구조개선에 활용하고 나머지는 제2롯데월드, 부산롯데
월드 개발사업 등 신규사업에 투입할 방침이다.
1월 19일에는 현대그룹과 엘지그룹이 신규사업을 중단하고 주력사업 중심으
로 부실계열사를 정리하겠다는 내용의 구조조정 방안을 주요 재벌 가운데 처음
으로 밝혔다. 현대그룹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시대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일관제철소 건설 등 신규사업 추진을 유보하고 이미 추진중인 대형 해외사업도
상당수 중단키로 했다. 현대는 또 그룹 역량 집중을 위해 문화일보 경영에서 철
수키로 하는 한편 부도상태인 한라그룹 계열사 인수에 참여하지 않기로 했다.
일관제철소 건설사업뿐만 아니라 ▲현대백화점 미아점·목동점 건설 ▲중국 북
경과 대련에서의 빌딩 건설·임대사업 ▲인도네시아 국민차 사업 ▲스코틀랜드
반도체 조립공장 등 대형 해외사업 추진도 중단키로 했다고 밝혔다. 또 문화일
보 경영철수와 관련해 문화일보의 경영상태가 나쁜데다 대기업의 언론 소유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감안, 지분을 정리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핵심 주력사업을 중심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한편 수익성과 재
무구조면에서 자립경영이 불가능한 계열사를 합병·매각 등의 방법으로 최단시
일내 정리키로 했다고 밝혔으나 구체적인 업종이나 계열사에 대해서는 거명하
지 않았다. 기업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현재 금강기획 등 4개사에서 시행
중인 사외이사제를 전 계열사로 확대시행, 대주주와 외부전문가들이 사외이사
제로 경영에 참여토록 했으며 외부 회계전문가를 외부감사로 영입, 기업회계의
투명성을 높이기로 했다. 상호지급 보증 축소와 결합재무제표 작성에 대해서는
관련 규정이 마련되는대로 성실히 이행키로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심사였던
지배주주의 사재 출자·출연은 개혁방안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박실장은 "정주
영 명예회장 가족의 개인재산을 검토한 결과 대부분이 주식인데다 나머지는 이
미 입보상태인 자택뿐이었다"며 "앞으로 가용재산이 있을 경우에는 언제든지
회사에 투자토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LG그룹도 오는 99년까지 90개 한계사업의 조기정리와 상호채무지급보증 완
전해소 등을 골자로 하는 `국가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구조조정방안'을 19일 발
표했다. 세계적 경쟁력 확보가 가능한 주력 사업분야를 선정해 경영자원을 집
중, 재배치하고 주력사업 분야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기업과의 제휴 및 유관사업
의 통폐합 등을 추진키로 했다. 특히 비주력사업은 ▲매각 ▲폐쇄 ▲중소기업으
로의 이양 ▲임직원에 의한 계열분리 등을 통해 단계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매
출액 2조4천억원 규모의 90개 한계사업을 99년까지 조기 정리하는 등 2002년까
지 15조원 규모의 사업을 정리하기로 했다. 또 비주력사업의 정리를 가속화해
차입금을 상환하고 저효율 자산의 매각과 외주(아웃소싱)를 통한 활용도 제고
등으로 오는 2002년까지 차입금 비율을 2백% 이하로 낮추는 등 재무구조를 개
선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재무정보의 투명한 공개를 위해 오는 99년까지 결합재무제표를 작
성해 2000년부터 공시키로 했으며 올해부터 상호채무지급보증 해소를 적극 추
진해 99년말까지 완전 해소할 계획이다. 또 지배주주의 사재를 출연, 유상증
자를 실시하고 자본금을 대폭 확충해 자기자본을 충실화하는 한편 해외자본을
적극 유치하기로 했으며 신규투자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사업성을 검토, 실시하
기로 했다. LG는 이밖에 소액주주, 채권자 등 이해관계자의 권익보호와 감독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사외이사제 및 사외감사제를 도입, 올해부터 주력기업을
중심으로 이 제도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지배주주로 하여금 이사로서
의 법적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등 경영책임을 부담토록 하고 회장실 기능도 축
소, 조정하기로 했다. LG는 중소기업지원자금을 2002년까지 2조5천원으로 확대
하며 협력업체 경영, 기술지원을 점차 늘려 2000년에 30% 수준인 6백개 업체,
2002년에 50%규모인 1천개 협력업체로 확대해가는 한편 오는 2002년까지 벤처
기업 육성을 위해 3천억원의 재원을 확보하기로 했다. LG 관계자는 "구체적
인 주력기업 및 한계사업에 대해서는 각종 부작용을 감안해 발표하지 않기로
했다"면서 "총수의 사재출연 부분도 아직 검토중이어서 구체적으로 밝힐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현대 LG 두 재벌의 구조조정 방안은 총수의 재산출연이나 지배구조
개선, 주력업종과 한계사업 정리 계획을 구체적으로 내놓지 않아 재벌개혁과 고
통분담 노력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재벌총수들은 외채난과 국가경쟁력 저하
의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내놓은 개혁안은 고작 한계사업정리
등 원론적인 수준에 그치고 만 것이다.
1월 21일에는 삼성재벌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이건희 회장 개인보유 부동산
1천2백80억원 상당을 매각, 기업 자금화하고 IMF기간중 이회장의 개인소득
90%를 종업원 복지기금 및 기업자금으로 출자키로 했다. 또 이회장의 예금 및
주식매각대금 등 1백억원을 고용조정대책기금으로 출자키로 했다. 삼성은 또
중앙일보를 영상사업단과 합쳐서 완전 분리독립시키고 서울 도곡동 1백2층 사
옥건설 추진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외국인 사외이사제도와 외부감사제를 전격도입하고 3∼4개 주력업종을 축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키로 했다. 삼성은 또 5년이내에 선진재무구조를 달성하기 위
해 삼성전자를 뉴욕증시에 상장하고 현재 2백60%인 그룹전체의 부채비율을 1
백50%까지 축소키로 했다.
재벌총수의 재산출연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이고 또 이것이 기업경영에
무한 책임을 지는 등 재벌총수의 책임경영자세를 확립하는 것인 양 선전되고
있지만 실제로 이것은 부실에 빠진 기업을 회생시키고 외국인자본의 인수에 대
응하기 위한 자구조치에 불과하다. 실제로 국내 상장기업 대주주들은 외국인 기
업 인수합병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주식 보유를 늘리고 있다. 1월 20
일 증권감독원이 지난 해 12월 1일부터 지난 1웡ㄹ 15일까지 국내 상장기업 대
주주들의 지분변동을 분석한 결과 신호유화(대주주 신호제지)를 비롯한 71개
상장기업의 대주주들이 모두 3734만8천주의 주식을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보유주식을 팔아치운 대주주는 (주)대동 등 21개 상장법인 대주주로서 모
두 666만4천주의 주식을 매도해 이 기간중 대주주 매수량의 18% 수준에 불과했
다. 이렇게 지분취득이 늘어난 것은 외국인 주식투자한도가 확대된 데 따라 외
국인 인수합병 시도에 맞서 경영권을 강화할 필요성이 커졌고, 주가의 급락으로 적은 비용으로도 지분확대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또 삼성의 중앙일보 계열분리는 제일제당과 신세계, 한솔 등 다른 계열분리의 경우처럼 재벌일족에 의한
재벌 세포분열일 수도 있다.

이러한 재벌측의 소극적인 대응에 대해서 김대중 당선자는 불만을 표시했다.
불만은 주로 총수들의 개인 재산출자에 대한 언급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과 계
열사 정리계획대상이 부실기업에 그쳐 실질적인 구조조정 노력이 보이지 않는
다는데 있다. 김당선자는 20일 오전 자민련 박태준총재에게 "그룹총수들을 만
나서 대기업들이 이번만은 적당한 구조조정을 해서는 안되고, 합의대로 강도높
고, 철저한 개혁에 노력하도록 독려해 달라"고 했다.
이와 관련, 김당선자측은 대기업들이 김당선자와의 합의를 지키지 않을 경우
대기업총수의 개인재산에 대한 실태조사에 나서는 문제를 신중히 검토중인 것
으로 전해졌다. 김당선자측은 합의 이행수준에 따라 금융권의 여신관리에 차등
을 두는 방안을 검토중이며 경제청문회를 통해 외환위기와 관련한 책임여부를
추궁하는 문제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재벌들이 재벌개혁에 대해서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데는 김대중
당선자측이 재벌개혁을 추진하는 방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강제적 소유분산 내지 소유와 경영의 분리방안을 일찌감치 포기함으로써 재벌들로 하여금 이제 더이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태도를 가질 수 있게 해주었다. 우선 위에서 본 대로 1월 13일 재벌총수들과의 모임에서 노동자들이 요구하는 재산환수(강제적 소유분산)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하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못박음으로서 재벌들을 진정으로 책임지우게 하는 방법으로서 가장 유력한 것을 스스로 포기했다. 또 18일의 TV 토론회에서는 배석범 민주노총위원장 직무
대행이 재벌의 책임을 물어서 재벌총수의 퇴진, 즉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요구
한 것에 대해서 "잘못한 정권은 선거로 바꾸지만 잘못한 경영진은 주주총회에
서 바꾸도록 할 수 있을 뿐이다"며 "소액주주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사외이사도
경영에 관여하도록 해 경영의 투명성이 보장되도록 할 것이고, 다만 재벌 총수
도 경영에 무한책임을 지고 잘못하면 퇴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그러나 오너냐 전문경영인체제냐가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느
냐 못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며 경쟁력 우선 원칙을 제시했다. 이것 역시 재
벌총수의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주주총회에서 결정할 수 있을 뿐 정부에서 개
입할 수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재벌에게 실질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유력한 수
단을 포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조하에서 재벌들이 책임을 지지 않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재벌들은 국민경제 회복에 가장 중요한 수출을 자신들이 맡고 있는데 김대중 당선자가 자신들을 제재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있는 것이다. IMF 구제금융 결정 이후 경제위기 책임을 지고 퇴진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있었던 재벌총수들은 김당선자의 이런 태도에 안심하고, 책임회피의 작태를 보인 것이다.
둘째, 법률적 제도적 조치를 통하지 않고 설득과 권고를 통하여 재벌 스스로
개혁하라는 주문은 무력할 수 밖에 없다. 노태우정권과 김영삼정권하에서 재벌
규제정책이 나올 때마다 여러 가지 방법으로 무력화시킨, 산전수전 다 겪어온
집단이 재벌들이다.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내기 위해 재벌들이 솔선하는 자율
적 조치는 물론 필요하다. 그러나 명분이나 당위론을 앞세워 개혁을 추진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총수재산 출자가 초법적 요구라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제도가 아닌 설득 내지 권고로 기득권을 포기하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김영삼정권이 개혁을 하면서 법률과 제도를 통하지 않고 대통령의 의지로 추진하다가 좌초한 선례를 봐도 분명하다. 재벌의 언론지배 문제도 부실기업 정리
차원이 아니라 흑자를 내는 언론기업이라 할지라도 재벌 내지 산업자본은 언론
을 소유할 수 없도록 법률을 제정하여 처리하는 것이 마땅하다.

3. 재벌문제 해결의 핵심 - 총수일족의 소유 경영 독점 철폐

재벌개혁을 둘러싼 논란을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재벌과
관련된 문제의 구조를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외환위기는 재벌의 과다
차입에 의한 무분별한 문어발 확장경영으로 기업경영이 부실해졌기 때문에 발
생했다. 그리고 이러한 파행적 기업경영과 부실은 바로 재벌총수 일족이 계열기
업들을 독점적으로 소유하고 경영권을 배타적으로 장악해왔기 때문에 필연화된
것이다. 즉 기업지배구조(structure) → 기업경영 행태(behavior) → 결과
(performance)의 인과관계인 것이다.


지배구조 행태 결과
총수일족의 소용경영독점 과다차입 기업부실, 부도
경제독재체제 문어발 확장, 자원배분의 왜곡
금융기관 소유, 언론 장악 금융기관 부실, 부도
부당내부거래 국가적 외환위기
중소기업 경영압박

IMF의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의 내용인 결합재무제표 작성,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은 기업지배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총수일족의 소유
경영독점구조를그대로 둔 채 재벌경영을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하다.
김대중 당선자측이 재벌측에 요구하여 합의한 소액주주의 권한 강화, 사외이
사제, 노동자의 경영참가도 총수의 경영독점을 견제하여 총수의 경영을 다소 합
리화하는 것일 뿐 재벌체제 자체를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총수와 비서실
(기획조정실)의 지위를 분명히 함으로써 책임을 지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지주
회사 설립을 허용하는 것은 그동안 재벌들이 계속 요구해온 것을 수용하는 것
으로 총수의 소유경영독점체제를 법적으로 보장해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소유와 경영이 일치된 지배구조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총수의 경영독재
에 대한 견제장치가 없기 때문에 무리한 경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무능한 2세
총수가 기업경영을 잘못해도 책임을 지울 수 없다. 또 법적, 제도적으로 여러
가지 규제장치를 해도 이를 벗어나는 여러 가지 행태들을 저지르게 된다. 예컨
대 그룹내의 종합금융사가 같은 그룹내 계열기업에 집중대출해주는 것을 규제
하였는데도 다른 그룹과 모의하여 서로 상대방 계열기업에 대출해주는 교묘한
방안으로 이를 벗어났다. 현재는 경제위기 책임론이 무성하니까 조심할 테지만
경제가 호전되면 또다시 과다차입에 의한 문어발 확장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
려운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는 경영자를 임면하고 경영자의 행위나 활동을 감시 감독하는
기업 내외부의 조직과 제도를 말한다. 기업 내부의 지배구조로는 주식회사의 경
우 이사회와 감사제도, 주주총회가 있고, 기업외부의 지배구조로는 합병 인수등
을 통해 기업의 경영자를 교체하고 경영권을 거래할 수 있는기능을 가진 자본
시장 혹은 기업지배권 시장이 중요한 요소이다.
외부의 자본시장 규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미국 방식(미국과 영국)은 자
본시장이 발달되어 있고, 소유분산와 소유와 경영의 분리로 전문경영체제가
구축된 국가에서의 기업지배구조이다. 거래은행의 참가, 종업원 참가 등을 통
해 기업 내부의 조직규율을 활용하는 독일방식(일본, 독일)은 자본시장이 발
달되지 못하여 주식발행 보다는 은행을 통한 자금차입비중이 높고 적대적 인
수 등 기업의 지배권 경쟁에 대한 정부의 규제와 부정적 인식 때문에 외부의
지배권 시장이 큰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내부의 조직규율에 크게 의
존한다. 은행, 종업원 등 이해관계집단이 이사회나 감사회를 통해 경영에 직
접 참가하거나 감독함으로써 경영자의 자의적 활동을 통제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는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못하고 자금조달에서 은행차입 의존도
가 높다. 계열기업간 주식소유에 의한 기업집단화와 경영권 보호정책(상장주식
의 대량소유 제한)으로 인해 인수나 합병이 미미하여 외부적 통제장치가 거의
형성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경영활동에 대한 감독은 기업내부의 통제장치에 의
존하도록 하고 있지만 재벌산하 개별 기업의 이사회나 감사는 오너의 자문기구
내지 형식적 기구화되고 있다. 대주주(오너)의 소유집중과 외부 차입의존 → 오
너의 지배권 독점 → 오너의 경영권 독점과 세습이 관철되고 있다. 차입에 의한 자금조달은 소유지분 하락을 가져오는 증자를 기피하면서 기업의 외형 확대를 도모하려는 재벌총수의 이해에 부합한다.
이러한 지배권을 바탕으로 대주주는 기업경영권을 독점하고 있다. 30대 재벌
가운데 대주주가 최고경영자(총수)인 경우가 29개에 달하고 거의 모든 재벌에
서 대주주의 친인척이 계열기업을 나누어 경영한다. 이 결과 임원 선임, 신규투
자 결정 등 재벌 계열기업의 최고의사결정에 대한 총수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전문경영자로 고용된 계열기업의 최고경영자(대표이사)는 중간관리자의 기능밖
에 수행하지 못한다. 신규사업 투자나 임원인사 등 주요사안에 관해서는 계열기
업 사장이 권한을 위임받는 경우가 전혀 없고, 다만 생산관리 마케팅 등 실무적
인 분야에서 다소 권한 위임이 있는 정도이다.
전문경영체제가 아닌 소유경영체제가 보편적으로 된 환경적 요인은 정경유
착이다. 즉 정부주도적 경제발전과정에서 대기업 성장의 열쇠는 정권의 보호와
특혜지원에 있었고, 주요 정보 역시 권력으로부터 나왔다. 정권도 소유자와의
유착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주인있는 경영'을 선호하였다. 비자금 조성 등 정경
유착에 기초를 둔 기업경영상의 비밀 유지 필요성 때문에 비가족 전문경영자가
회계관리 등 기업의 핵심적인 경영정보에 접근하는 것은 제한되었고, 이들에게
는 재산의 중간관리자 역할만 주어진 것이다. 소유가 승계되면 경영권도 가족에
게 승계된다. 총수의 혈족은 경영능력에 관계없이 기업 내외의 경영자 시장에서 경쟁을 거치지 않고 최고경영자로 된다. 재벌총수는 대기업을 자신의 사적 소유재산으로 취급하고 있다. 한국 재벌의 기업지배구조는 개인독재체제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 이러한 총수 개인독재의 기업지배구조를 개혁하는 방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첫째, 온건한 방법으로서 사외이사제나 노동자경영참가 등으로 총
수의 경영전횡을 견제하는 것이 있다. IMF가 요구하였고 김대중 당선자와 재벌
이 시행할 것을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사외이사
도 총수가 임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진정한 견제능력이 없고, 10여명의 이사 가
운데 하나인 노동자대표 이사는 경영정보를 일부 알 수 있을 뿐 총수의 결정을
바꿀 수 없다.
둘째, 보다 적극적인 방법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시키는 것이다. 즉 재벌총수
인 소유주를 경영에서 배제시키는 것에 있다. 이것은 재벌 자신의 자발적 결단
에 의해서 시행될 수도 있고, 오너를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시킬 뿐 경영권
을 가지는 대표이사를 맞지 못하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함으로서 시행할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패전 이전에 재벌체제 재편의 전사(前史)로서 재벌일족의 경영일
선에서의 후퇴가 있었다. 이른바 재벌의 전향(轉向)과 개조(改組)이다. 먼저
1931년 만주사변 발발을 계기로 우익군부파시즘이 주도한 반재벌적 사회풍조
(1932년 3월에는 미쯔이합명 이사장 團琢磨가 혈맹단원에 의해 암살됨)에 대처
하여 사회사업에 대한 헌금, 재벌가족의 제1선에서의 후퇴, 산하 회사주식의 공
개등을 실행했다. 미쯔이의 경우 삼정합명회사 상무 池田成彬이 주도하여 1933
년 4월 삼정 창업 3백년제를 계기로 삼정총본가 대표인 미쯔이합명 사장 三井
八郞 右衛門高棟의 은거를 시발로 36년 1월까지 합명사장을 계승한 三井高公
이외의 모든 동족을 퇴임시켰다. 또 주식공개의 경우에는 1933년에 삼정합명 소
유 왕자제지 주식 10만주등과 삼정물산소유 동양레이욘 주식 33만주를 공개매
각했다. 미쯔비시도 미쯔비시중공업 주식 40만주를 공개하였다. 그리고 중일전
쟁시기인 1937-40년에 걸쳐서 전시경제하 재벌 산하기업 특히 군수관련 중화학
공업 기업의 방대한 자금 수요를 충족시킬 필요성에서 지주회사를 합명, 합자회
사 형태에서 주식회사 형태로 개조함으로써 본사주식을 공개하였다. 미쯔이의
경우 1940년 8월에 삼정합명이 삼정물산에 합병되고 신삼정물산은 주식 600만
주 중 150만주를 공개하여 2억 250만엔의 외부자금을 동원했다. 미쯔비시 본사
도 주식회사로 되고 1940년 5월 증자시에 신주 120만주를 연고모집의 형태로
공개하여 1억8천만엔의 외부자금을 동원했다.
기업부도의 경우 자연히 경영권을 상실하는데 이것은 무책임한 자가 파멸하
는 것일 뿐 제대로 기업경영의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다. 재벌체제의 문제는 기
업이 완전히 망할 때까지 총수일족들이 경영권을 끝까지 쥐고 있다는 데 있다.
집권정당도 국정을 잘못 운영하면 국민의 심판을 받아서 정권을 내놓는데 기업
경영을 엉망으로 한 총수가 계속 경영권을 가지는 것은 불합리하다.
셋째, 가장 적극적이고 확실한 재벌개혁 방법은 재벌총수일족의 소유를 분산
함으로써 경영에서 배제시키는 것이다. 총수의 경영독점은 계열회사 출자지분
까지 포함한 소유집중 때문에 가능하다. 재벌문제의 해결은 총수일족의 소유집
중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적 과제이다. 소유집중의 해결방법으로서 상속세
증여세 강화, 세제개편 등 간접적인 방법은 실효성이 적다. 대부분의 재벌은 2
세로 경영권이 승계된 상태이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삼성재벌의 소유권과
경영권 상속을 위한 행태 등을 봐서도 그렇다. 재벌체제 해소는 산하 기업에 대
한 재벌가족 소유주식의 직접적인 소유분산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실질적으로
달성될 수 있다. 즉 '재벌해체'가 이루어져야 한다. 소유주식을 유상으로 환수
하여 이를 다수 국민들과 해당기업 종업원들에게 매각하는 것이다. 재벌해체는
총수일족의 소유 경영지배와 다각적 경영을 해소하고 계열대기업을 독립전문경
영의 대기업, 국민기업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김대중 당선자는 총수일족의 보유주식 환수에 의한 재벌해체는 시장경제와
민주주의 하에서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가. 결코 그
렇지 않다. 일본과 독일에서는 2차세계대전 직후 재벌해체가 이루어졌지만 이
것은 혁명을 계기로 한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패전을 계기로 재벌이 전쟁에 핵
심적으로 관여한 책임을 물어서 연합국의 대자본이 강제로 실시한 것이다. 자본
간의 전쟁에서 패배한 결과인 것이지 민중권력의 수립은 아니었다. 재벌해체는
민중권력의 집권에 의하지 않고서도 추진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재벌해체는 미국독점자본의 주도 아래 일본 독점자본을 재벌가족의
지배로부터 자본가계급 일반의 소유로 바꾸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재벌해체는
두가지 이유 때문에 시행되었다. 하나는 일본경제 내의 과도한 독점구조 때문이
고, 다른 하나는 중국전쟁과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재벌과 군부와의 결속 때문
이었다. 재벌해체의 목적은 소유를 광범하게 분산시켜 '경쟁적 사유기업제도'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또 점령군 당국은 재벌의 총체적 기업활동의 비효율성을 주목했다. 서로 관계가 없는 기업들도 종종 자회사 중심으로 모여 있었는데 재벌내의 공동자원이 비효율적인 회사들을 보호해주고 있다고 보았다. 비효율적인 회사들의 적자가 총괄적인 재벌운영에서 얻는 이익에 의해 쉽게 보전될 수도 있고 또 숨겨질 수도 있었다. 점령군 당국은 재벌제도가 경쟁에 이바지하지 못한다고 보았다. 효율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효과적인 경쟁이 필요한데 재벌제도에서는 유효한 경쟁이 출현하기 어렵다고 보았다. 재벌해체작업의 주요 내용은 지주회사의 해체, 재벌가족의 기업지배력의 배제, 소유주식의 분산화였다.
지주회사에서 회수된 재벌가족 소유주식은 일반자본시장을 통하여 매각되고,
일부는 종업원들에게 매각처분되었는데 그후 일반자본시장에서의 거래 규제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 대부분은 자본가계급의 소유로 되었다.
재벌해체후 개별 가족에 의한 지배는 분쇄되었지만, 미국의 일본재무장 및
공산주의 방어동맹 구축 정책에 따라 기업집단이 재조직되어, 주력 금융기관에
의한 산하기업 주식 소유를 통해서 근대적 독점자본 지배체제가 구축되었다. 구
재벌에 의한 자본적 지배의 소멸, 집중배제에 의한 기업의 분할은 독점기업간의 경쟁을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었고,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한 독점간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됨으로써 일본자본주의의 생산력 발전의 기반이 되었다. 요컨대 일본의 예에서 보는 것처럼 재벌해체는 결코 반자본적인 것이 아니고, 후진적이고 가족적인 독점자본을 근대적 독점자본으로 재편하는 것이다.
이제는 재벌을 해체함으로서 기업경영을 안정시키고 국가적 경제위기를 극
복하여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재벌의 진정한 책임 감수이고 고통분담이다.

4. 노사정위원회와 노동조합의 역할

이제 노사정위원회의 결정이 대단히 중요하게 되었다. 진정한 노사합의가 이
루어져야 한다. 서구에서의 역사적 경험을 보면 노사 합의의 핵심은 노동자들이 임금을 동결 내지 삭감하는 대신 기업측이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일자리를 최대한 확보해주는 것에 합의하는 것에 있다. 서구에서 지나친 임금인상이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이에 따라 실업률이 상승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은 재벌들의 잘못된 기업경영으로 기업이 대량
부도나고 국가적 외환위기가 발생한 것으로 선진국들의 경우와는 다르다. 이러
한 상황인데도 현재 정부와 재계는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과 정리해고에 의한
대량 실업을 동시에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들로서는 결코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일자리는 노동자의 생활을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이다.
노동현장에서는 통화긴축과 금리상승에 의한 연쇄부도, 재정긴축, 경제성장
률 저하 기업감량경영, 임금체불, 대량 감원, 신규고용 사실상 중지, 기업 인수
합병과정에서의 해고 등으로 이미 실업대란을 겪고 있다. 여론조사기관인 현대
리서치연구소가 5일부터 이틀 동안 전국 성인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업위기
와 관련한 설문조사결과에 의하면 응답자 63%가 기업의 구조조정 등으로 자신
또는 가족이 현 직장에서 실직할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응답
자 가운데 12.4%는 이미 자신 또는 가족이 직장을 잃었으며 실직 이유로는 `회
사 부도 및 폐업'(48.4%), 감원(40.3%)을 꼽았다. 한편 `구제금융시대 기업과 국민이 살아남기 위한 최선의 방법'에 대한 물음에는 68.2%가 `노동시간 단축 및 임금삭감을 통한 고통분담'이라고 답한 반면 `정리해고제 도입'과 `회사경영권 인계'는 16.8%와 13.4%에 그쳤다. 또 응답자 43%는 동료의 실직을 막기 위해 10% 정도의 임금삭감은 감수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리해고제의 입법화는 기름에 불을 끼얹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만을 가져올 정리해고문제가 가장 핵심적이
고 시급한 의제가 되는 것은 노동자에게 지극히 불리하다. 이제 노사정위원회의 의제는 노동조합측의 강력한 요구를 기반으로 먼저 경제위기를 초래한 주범인 재벌에 대한 개혁방침의 입법, 제도화를 추진한 후 고용조정을 포함한 노동문제로 옮겨가야 할 것이다. 소유경영자인 재벌총수들이 기업경영을 잘못하여 기업을 부실로 빠뜨리고 국가경제를 부도위기로 몰아넣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이들을 경영에서 퇴진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의 운영형식면에서 두 가지가 보장되어
야 한다. 첫째, 노사정위원회의 모든 결정은 합의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노사정 3자 위원이 다수결로 표대결을 하면 사용자와 정부측이 한편이 되어 노동
조합대표들은 소수가 될 수밖에 없다. 현재까지는 이 원칙을 지키는 듯하지만
앞으로 본격적인 의견 대립국면에서도 이 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이다. 둘째, 노
사정위원회의 위원들간의 모든 합의는 잠정 합의의 성격일 뿐, 최종 합의는 노
동조합 연합조직 조합원 대표조직(대의원대회 등)의 승인을 거쳐야 성립함을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민주노총은 임시대의원대회를 통해 노사정 합의를 승인
하는 것을 규정해두고 있기 때문에 대의원들의 정확한 판단이 대단히 중요하다.
대의원들의 판단력을 강화하기 위해 교육과 조합원 토론회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추궁과 향후 기업경영 합리화 차원에서 재벌체제 해체는 시
급하다. 사실 외환위기는 외국투자가 입장에서 본다면 재벌대기업을 믿고 돈을
빌려줬다가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외국투자가들의 가장 중요한 주
문도 대기업들의 과다차입 문어발 과잉투자, 도산 등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한 재벌의 행태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오너경영체제를 전문경
영체제로 바꾸고 계열기업들을 독립기업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즉 재벌체제
를 개선(오너경영을 합리화)하는 차원이 아니라 해체(오너지배체제의 청산)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한 재벌개혁은 입법과 제도를 통하여 추진해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에서
노동조합 대표는 국회에서 재벌개혁을 위한 법률, 예컨대 [재벌해체(또는 개혁)
특별조치법] 제정을 요구해야 한다. 현재 국회의원들의 성향을 봐서 이것이 쉽
게 통과되기를 기대하기가 어렵겠지만 이에 대처해서 여론조사 등 다수 국민의
의견집약으로 국회의원들을 압박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 김대중 정권에게 이것
을 강제해낼 수 있는 것은 민주적 노동조합운동으로 조직된 노동자계급의 강력
한 반재벌투쟁 뿐이다. IMF구제금융이라는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이러한 위기
를 초래한 재벌을 어떻게 해체해나갈지 노동자계급으로서는 <1998. 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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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1998 Pusan Kit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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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simcity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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